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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아티스트

돗토리 도예가 , 마에다 아키히로 (前田昭博) -2

다음은 돗토리에서 만난 마에다 아키히로(前田昭博)씨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이 취재는 돗토리현립박물관의 협조로 이루어졌음을 알려드립니다. (L_Liako、 M_Maeta Akih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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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토리현 야즈군가와하라마치는 마에다 씨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조용한 시골길이 아름다운 곳, 해마다 겨울이면 설국으로 변하는 곳. 그는 그 곳에서 아내도 만났고 32년이란 긴 세월을 한 자리에서 백자를 빚었다. 그의 작품은 한국의 백자와는 다른 매력이 있어 보인다.  생활 자기와는 달리 조형적 작품성을 강조한 듯하다.

색은 흰색이 희다 못해 푸른빛을 띠기도 하고 빛에 따라, 시간의 변화에 따라 조금씩 다른 흰색이 된다. 형태도 일반적인 도자기와는 달리 단순히 표면이 매끄러운 게 아니라 비틀거나 굴곡을 주어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선이나 면의 처리가 심플해 보이지만 그것까지 결정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라고 한다. 디자인이 결정되는 것도 순간이라고. 그의 작업은 손으로 거의 이루어진다고 하는데 손을 보니 음악하는 사람처럼 곱기만 한 게 신기했다.

사실, 무언가 창작의 범위를 정해놓고 작업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니다. 십년씩 세상이 세 번 바뀌는 동안 고뇌의 날들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흰색의 작업은 형태나 색에 있어 결점이 쉽게 드러나는 작업이다. 30여년이란 긴 시간 동안 작가는 자신과 싸우며 흰색을 고집해왔고 그런 인내의 선물이 오늘날 그의 작품세계를  이룬 듯하다.

우리는 먼저 도자기를 만드는 작업장 옆에 그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는 공간으로 안내되었다. 처음엔
그가 만든 자기에 녹차가 그리고 다음엔 커피가 담겨져 내왔다. 작은 생활자기에도 그의 작품의 특성은 살아있었다.  한번은 유명한 오차선생님이 오셨는데 마에다 씨의 물컵이 달라보인다며 그것을 사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의 물컵을 특별히 정해 놓고 쓰는 것도 아니라고 하는데 정말 오늘도 그가 들고 있는 물컵이 달라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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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 _ 마에다 씨에게 백자는 어떤 의미인가요?

M _ 처음에 한국에서 백자가 만들어졌을 때 달의 항아리라고 불려졌다고 하지요? 달빛에 비친 빛과 같은 흰색. 그것은 촛불에 비친 색이기도 하고 뭐라고 표현하기가 쉽진 않지만 그 흰색에도 표정이 있고 마음으로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흰색은 참 특별한 색이지요. 조선의 유교사상을 생각하면 흰색이 떠오르는데 그래서인지 한국은 대표적인 색이 흰색이고 일본은 블루인 것 같습니다.

L _ 한국의 백자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M _ 이조의 도자기를 보면 단아한 곡선이 아름다우면서도 골격이 있고, 뒤틀린 부분도 있지만 알 수 없는 도도한 힘이 느껴집니다.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이 흰색이라고 하지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백자를 만드는 한국의 작가와 함께 전시를 해보고 싶습니다. 똑같이 흰색을 좋아하고 흰색에 매료되어 작업하고 있지만 문화와 민족이 다르면 역시 표현의 방법이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L _ 마에다 씨에게 흰색은 어떤 것입니까?

M _ 제가 사는 이곳을 산인(山陰)이라고 합니다. 산인의 구름의 흰색, 눈의 흰색이 제게 흰색의 영감을 줍니다. 차갑게 보이지만 따뜻한 흰색입니다. 얼음의 차가움과는 다릅니다. 백자는 빛의 변화와 보는 사람과 사이에 뭔가가 있습니다. 흔히, 형태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다른 게 있습니다. 중국과 한국의 백자가 있었기 때문에 백자의 이미지가 있을 수 있었고 나의 작업도 가능했습니다. 백자는 흰색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대는 다양한 색의 시대라 할 수 있고 웬만한 색은 그렇게 충격적이지 않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흰색보다 더 강한 메시지는 없다고 봅니다.


L _ 백자는 빛으로 즐기는 재미가 다르다고 봅니다만 어떻게 감상하는 게 좋을까요?

M - 맞습니다. 백자는 빛의 강약과 방향에 따라 음영이 다르고 그에 따라 느낌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백자를 즐기는 즐거움 중 하나라고 할 수 있죠. 백자는 형태 중심으로 전체를 즐기는 것도 한가지 방법입니다. 백자의 최고의 스테이지는 자연적인 빛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색이 변하곤 하지요. 하늘의 밝은 색을 띠기도 하고 오후에는 석양의 빛을 받아 노르스름한 색을 띠기도 합니다. 이것이 바로 백자를 감상하는 매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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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 백자를 만들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M _ 어느날 대학교 선생님의 부름을 받고 찾아게 되었습니다. 자기, 백자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죠. 새하얀 백색의 도자기를 처음 봤을 때 충격적이었고 무척 감격했습니다. 그것이 계기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때부터 여성이 짝사랑을 하듯, 백색 이외에는 더 이상의 군더더기가 없는 백자에 빠지게 되었죠. 다른 터치가 없는데도 그 도도한 모습은 역시 도자기의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L _ 백자와 함께 한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어떠신가요?

M _ 네. 어느새 32년이 지났네요. 조금 있다 전시장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림이나 색이 전혀 없는 백자의 카테고리 안에서 작업해야 하는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고민과 싸우면서 제가 생각한 것은 저로 인해 백자의 영역이 넓어진다는 것이었고 저와 같은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백자의 세계를 알리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L _ 백자를 고집하는 작가로서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입니까?

M _ 백자야말로 제한된 조건 즉 표현에 있어 색이나 그림을 칠하거나 그리지 못하는 부자유의 부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거꾸로 제한된 백자의 세계에서 조금이라도 누리는 자유는 역시 백자를 선택하길 잘 했다고 느끼게 합니다. 중국과 한국에도 아름다운 백자가 있습니다만 분명 일본적인 백자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과 한국의 백자가 느껴지는 일본인의 백자를 제가 만들어 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어떤 형태일지, 어떤 분위기일지를 만들어가면서, 찾아가면서 ....


L _ 도자기는 빚는 것도 잘 빚어야 하지만 굽는 것이 어렵다고 봅니다만....

M _ 도자기는 굽는 동안 상처가 많이 납니다. 굽기 전보다 더 좋아지지는 않지요. 그러나 도자기는 굽지 않으면 완성품이 아니고 굽기 전에 형태가 좋으니까 사겠다고 하는 사람도 없으니 역시 구어야 하지요. 아무런 변화가 없게 굽는 일은 어렵지만 굽는다는 것은 도자기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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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 _ 마에다 씨의 작품은 선이 굵고 힘이 있으며 현대적인 작품의 이미지이면서 전통의 맛도 느껴집니다. 전통이 녹아있는 미니멀리즘이리고 할까요? 마에다 씨에게 전통은 어떤 것입니까?

 M _ 전통이란 것은 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전통은 시대에 따라 변합니다. 그 시대의 최첨단의 것, 완전히 새로운 것이 전통이라고 봅니다.


L _  작업할 때는 어떠신가요?

M _ 나의 작업은 기술이기도 하지만 기분이 중요합니다. 물레 작업이 끝나면 면을 만들고 선을 정리하기도 합니다. 큰 작업을 할 때 한 시간 정도 걸리지만 그것은 지지 않는 싸움이어야 하기 때문에 힘을 모아 집중해야 합니다. 마치 스모선수가 몇 초간의 싸움을 준비하듯 작업하기 때문에 방해를 받으면 힘이 들죠. 데생 같은 것을 하지 않고 머리 속의 생각을 짧은 시간 내에 손으로 옮기는 작업입니다. 마치 손 끝에 뇌가 있는 것처럼...

L _눈, 구름 외에 창작의 모티브가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M _ 내가 작업하는 이곳의 환경입니다. 나는 흰색을 매우 좋아합니다. 나만의 흰색 즐기기는 기술적인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철학적이기도 하고 시상을 떠올리는 느낌이기도 합니다. 아무 것도 없이 표현한다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것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가끔 삶이 힘들어도 태어나길 잘했다 맘 먹는 것처럼, 산속에서 먹는 주먹밥의 맛처럼, 지금이 아니면 안되는 최고의 백자를 만들고 싶습니다...

마에다 씨는 지금까지 왕성한 작업을 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를 말해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중 두 가지 이야기가 나에게는 무척 인상깊었다. 하나는 요나고 공항이 개항하던 날, 한국에서 첫 비행기로 마에다 씨를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소문을 듣고 공항이 생기자마자 찾아왔고 작품을 구입해 돌아간 한국인의 이야기.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평생 도예가의 길을 걸을 거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시절, 좁은 작업공간에서 일하고 있을 때 만난 니카타 출신  부인의 내조 이야기였다. 그녀는 그가 존경하는 어떤 선생님보다 더 엄격한 선생님이기에 그의 백자는 앞으로도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