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내용은 여성중앙 7월호에 소개된 리아코가 만난 일본의 살림꾼 다섯번째 이야기입니다.
아소 케이코 씨는 현재 교토의 마치야에 산다. 마치야는 주택과 상점이 일체화된 교토의 가옥형태를 말한다. 에세이스트로 활동하며 줄곧 도쿄에서 생활했던 그녀는 14년 전 건축가인 남편을 따라 교토에 왔다. 2008년 등록유형문화재가 된 마치야에 살면서 오래된 물건들이 알려주는 생활의 지혜에 푹 빠져 지내는 그녀에게 일본의 아름다운 마치야 생활, 민예, 그리고 교토의 매력에 대해 들었다.
글 _ 리아코 (liako company) 사진_마츠이 미츠코 (Matsui Mitsuko)
취재협조_가와이간지로기념관(Kawai Kanjiro's House),리세이(李靑), 교토시(京都市)
오래된 물건으로부터 지혜를 배우다
교토 사람들에게 아소 케이코란 이름을 물으면, 도쿄 사람의 눈으로 바라본 교토에 대한 책을 쓴 에세이스트라고 말한다. 1980년대에는 작사가로서 많은 히트곡을 선보이기도 한 아소 씨는 1996년 결혼 후 교토로 이주했고, 건축가인 남편과 함께 전통공법으로 복원한 마치야에서 살고 있다.
오래 전부터 앤티크 소품이나 가구와 같은 오래되고 질이 좋은 물건을 좋아했다는 그녀는 시간이 흐를수록 멋이 깊어지는 물건 앞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세가 달라진다고 한다. 그녀는 조선시대의 물건에 반해 자주 찾는다는 교토의 소문난 두 곳,‘가와이간지로 기념관’과 한국 전통카페‘리세이(李靑)’를 추천했다.
가와이간지로 씨는 일본을 대표하는 민예연구가, 야나기무네요시(柳宗悦),하마다쇼지(浜田庄司)와 함께 민구(民具)의 아름다움을 다시 보고 알리는 민예운동을 주도한 인물이다. 도자기 작가였던 가와이 씨의 작업장(도자기를 굽는 계단식 가마가 그대로 보존되어있다)과 집이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있다. 교토에서 소문난 한국식 전통카페로 알려진 리세이는 재일교포 2세인 정령희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교토에 고려미술관을 만들었다. 이 두 곳에서 아소 씨가 관심을 갖는 오래된 물건들은 조선의 물건들이다. 문득 그녀가 이처럼 오래된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된 동기가 궁금해져 물어보았다.
“제가 오래된 물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어머니의 조부모님 집이 에도시대에 지워진 집이었어요. 일본 술을 만드는 양조장이었는데 오래된 집이었고 그 집에 있는 물건들도 모두 낡은 것이었어요. 그런 영향을 조금 받았다고 할까요? 제가 쓴 책에도 있지만…유럽여행을 가도 오래된 집에 머무는 것이 좋아요. 요즘은 물건의 아름다움보다는 편리를 추구해서 진정한 아름다움의 의미가 조금 변한 것 같지 않나요? 옛날 것은 사용하기가 어렵고 불편하다고 하지만 그런 것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은 소중하죠. 세탁기도 있고 건조기도 있지만 기모노는 세탁기로 빨 수 없잖아요. 오래된 물건에서 느끼는 아름다움, 그것을 소중하게 써서 아름답게 여기는 자세, 그것이 바로 제가 오래된 물건에 관심을 갖는 이유인 것 같네요.”
마치야에서 에코라이프를 배우다
아소 씨는 도쿄인의 눈으로 교토에 관한 책을 여러 권 집필했다. 그녀가 느끼는 도쿄인과 교토인은 어떻게 다른지 물어보았다.
“살고 있는 사람들의 가치관이 가장 다르다고 생각해요. 도쿄는 향상심이 필요한 곳이죠. 뉴욕과 비슷하다고도 볼 수 있어요. 다른 사람보다 앞서는 일이 풍요로움과 이어지는 곳이고 그에 반해 교토는 탐구심이 요구되는 곳입니다. 다른 사람한테 이기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보다 깊게 파고드는 일이 중요한 곳이죠. 넘버 원보다는 온리 원을 지향하는 곳. 타인보다 앞서기보다는 자기에게 지지 않는 일이 더욱 중요한 곳입니다. 그리고 도쿄는 새로운 것 & 새로운 물건, 미래에 보다 더 높은 가치를 두는 곳이지만 교토는 오래된 것 & 오래된 물건, 그리고 과거에 비중을 두는 곳입니다.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마치야에서의 생활은 현대인에게 또 하나의 에코라이프인 듯 하다. 마치야의 생활을 통해 배우는 지혜에 대해 그녀는 이렇게 설명했다.
“교토는 분지 지형이기 때문에 일본에서도 고온다습하기로 유명한 곳입니다. 옛날에는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없었으므로 조상들은 더위를 식히기 위해 다양한 지혜를 짜냈습니다. 현재는 교토의 마치야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지만 저희처럼 일부러 에어컨 없이 생활하는 집들도 많이 있습니다. 더위 식히기를 오감(五感)으로 느끼기 위해서이죠. 여름에 마치야에서 오감으로 더위를 식히는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하면 먼저 마당에 물을 자주 뿌립니다. 물을 뿌리고 마당 지면의 온도를 낮춤으로써 바람을 만들어내고 (바람은 온도차이로 인해 발생하니까요), 그 바람을 실내에서 느낍니다. 규모가 큰 마치야에서는 앞뒤로 각각 정원이 하나씩 있어 정원 한 곳에 물을 뿌리면 온도차로 인해 집안에 시원한 바람이 들어옵니다. 에어컨은 실내를 시원하게 하는 대신 실외기를 통해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데 마당에 물을 뿌리면 먼저 외부가 시원해지고 그 나머지 냉기를 실내에서 받아들이는 식입니다. 겸허하죠. 이기적이지 않습니다. 에코(eco)는 에고(ego)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녀의 여름맞이는 여름 자리를 깔거나 칸막이용 문을 바람이 잘 통하는 여름용 발로 바꾸고 다타미 위에 돗자리 등을 깔아주는 일로 시작된다. 이는 바람 뿐 아니라 일광을 차단해 생기는 그늘 때문에 시각적으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그 밖에도 식기를 시원한 유리그릇으로 바꾸고 모시 소재로 된 모기장, 부채, 모기향, 창가에 다는 풍경 등을 준비한다. 그녀의 여름맞이 소품은 예로부터 전해 오는 더위 식히는 도구들이다.
그녀가 말하는 오래된 물건의 아름다움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걸까? 그리고 무엇을 배운다는 걸까?
“옛 것은 건축물, 가구, 부채 등등 모두가 나무나 종이, 흙, 철 등 천연 소재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세월과 함께 멋이 배어납니다. 새로운 것 이상의 아름다움, 운치가 있죠. 만든 사람뿐 아니라 세월이나 사용하는 사람이 그 아름다움을 완성시킨다고 할까요? 한편 플라스틱이나 현대의 건축물은 처음 만들어졌을 때가 가장 아름답죠. 그러한 점이 오래된 것이 갖는 가장 멋지고 훌륭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거리 풍경도 마찬가지죠. 또 그것은 인생에도 빗대어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아름답고 멋이 더해질 수 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오래된 것은 다루기도 손질하기도 힘들지만 정성을 쏟은 만큼 그 아름다움으로 화답해 주므로 재미가 있습니다”
관습에 억매이지 않는 미의식을 배우다
그녀의 집에도 조선시대의 물건이 있다. 일반적인 반닫이보다는 훨씬 작은 것으로 교토의 골동품 점에서 구입한 것인데 매우 소박하고 꾸밈이 없으며 다소곳하고 품위가 있는 물건이 라고 한다. 그 위에 조선시대의 고배(高杯)를 장식하거나 일본 에도시대에 만들어진 이마리야키의 돗쿠리(술병)를 놓아 장식한다고. 조선시대의 물건들은 신기하게도 일본의 옛것과도 이질감 없이 잘 어울린다. 그녀는 그것이 오래된 것, 옛 것의 좋은 점 중 하나라고 강조한다.
“ 교토의 리세이(李青)라고 하는 전통찻집에서 구입한 백자떡살은 조선의 쟁반 위에 일본의 골동 향합, 영국의 골동 향수병과 함께 올려놓고 방에 장식해 두었습니다. 민예(民藝)에서는 ‘용의 미(用の美)’라는 말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것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하지만 어설픈 현대작가의 장식품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여러 사람이 사용하고 사랑을 받는 가운데 맛이 느껴지는 것으로 변하는 것이죠.”
그녀는 가와이 간지로 씨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것이 무엇이고 구체적으로 무엇이 그렇게 매력적이었는지 물었다.
“가와이 간지로 선생의 매력은 매우 많습니다만, 관습이나 원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미의식과 맞는 것, 즉 자신의 가치관과 맞는 것은 아무리 관습이나 원칙에 까다로운 교토이지만 적극적으로 취하려는 점이라고나 할까요? 간지로 선생은 시마네 출신으로 교토 사람이 아닙니다. 현재의 국립도쿄공업대학 졸업 후 교토에 정착한 분이죠. 저도 도쿄 출신이라서 교토에서는 외부인이기 때문에 다른 고장 출신으로서 교토에서 생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현재 기념관으로 꾸며진 가옥도 외관은 얼핏 보면 마치야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조금 다릅니다. 자기의 기호, 취향을 반영하면서도 주위와의 조화까지 고려하고 있지요. 기념관 내부는 마치야에서는 볼 수 없는 이로리(방바닥의 일부를 네모나게 잘라 내고, 취사용·난방용으로 불을 피우는 장치), 커다란 호리고타쓰(방바닥을 파서 다리를 뻗을 수 있게 한 것)가 있고 그야말로 ‘간지로 월드’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답니다.
특히, 선생의 타인과 주위를 존중하며 열린 마음으로 자신의 자유로운 발상을 살리는 점을 저도 사람과의 교류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닮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선생은‘생활이 일이고 일이 생활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스스로 실천하셨는데 저도 일과 생활을 분리시키지 않고 일체가 된 삶을 살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아소 씨에게 오래된 물건으로부터 배운 지혜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녀는 오래된 물건은 소중히 다루다보면 그것이 생활의 즐거움이 되고 그 아름다움의 가치도 달라진다고 했다. 깨진 그릇을 이어 붙인다고 해서 그 가치가 없어지지 않는 것처럼, 그 사이를 이어 붙인 모습이 아름다우면 가치가 높아지는 것처럼, 그것을 소중히 여기는 자세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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